유명 팝스타의 뮤직비디오 하단이나 썸네일 한구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VEVO(비보)' 마크. 많은 이들이 유튜브의 공식 인증 마크나 영상 편집 효과쯤으로 오해하지만, VEVO의 진짜 정체는 전 세계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던 초거대 음반사들이 넷플릭스나 훌루처럼 구축하려...
유명 팝스타의 뮤직비디오 하단이나 썸네일 한구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VEVO(비보)' 마크. 많은 이들이 유튜브의 공식 인증 마크나 영상 편집 효과쯤으로 오해하지만, VEVO의 진짜 정체는 전 세계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던 초거대 음반사들이 넷플릭스나 훌루처럼 구축하려 했던 '독립형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이었다.지난 1일, 음악 전문 유튜브 채널 '유령고구마'는 VEVO의 탄생과 화려했던 전성기, 그리고 결국 유튜브라는 거대한 생태계 아래로 흡수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흑망성세를 조명한 영상("현재 위기에 처한 전 세계 뮤직비디오를 소유한 VEVO 근황")을 공개했다.본지는 이 영상을 바탕으로 VEVO의 흥망성쇠가 오늘날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날카로운 시사점을 분석했다.
2000년대 초반, 냅스터로 대표되는 P2P 불법 공유 시대가 열리며 전 세계 음반 시장과 뮤직비디오 산업은 처참히 붕괴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 탄생한 유튜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막대한 저작권자인 음반사들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미미했다.구글에 끌려다닐 수 없다고 판단한 세계 1위 유니버설 뮤직 그룹, 2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자금줄 아부다비 미디어는 2009년 연합 플랫폼 'VEVO(Video Evolution)'를 출범시켰다. 훗날 워너 뮤직 그룹까지 합류하며, 사실상 전 세계 주류 뮤직비디오의 판권을 독점하는 막강한 공룡이 탄생했다.결과는 초대박이었다. 고화질 공식 뮤직비디오만을 독점 공급하는 VEVO는 오픈 직후 유튜브를 위협하는 전 세계 2위 영상 콘텐츠 앱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최고급 스타들의 영상에만 고단가 프리미엄 광고를 붙이는 전략은 광고주들을 열광시켰다. 조회수 1억 회를 달성한 영상에 부여하는 'VEVO Certified(인증)' 마크는 팝스타 성공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VEVO의 성공 이면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막대한 트래픽의 80% 이상이 자체 웹사이트가 아닌, 파트너십을 맺은 유튜브 플랫폼(아티스트 이름+VEVO 채널)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유튜브가 지구를 집어삼키는 플랫폼으로 폭풍 성장하자, 대중은 굳이 뮤직비디오 하나를 보기 위해 유튜브를 이탈해 VEVO 앱을 켤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구글에 떼어주는 막대한 수수료로 재주는 VEVO가 넘고 돈은 구글이 버는 구조가 고착화되었다.VEVO는 독자 생존을 위해 자체 앱과 채널을 강화하고 야후, 페이스북과 손을 잡았으나, 대중의 머릿속에 '영상=유튜브'라는 공식은 이미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뒤였다.
몰락의 결정타는 2018년에 터진 사상 초유의 해킹 사건이었다. 악명 높은 해커 그룹이 VEVO의 내부 서버와 유튜브 공식 관리자 권한을 탈취해, 당시 전 세계 조회수 1위(50억 회)를 달리던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 뮤직비디오를 삭제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VEVO의 허술한 보안 실태가 폭로되며 대기업 광고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결국 해킹 사건 직후인 2018년, VEVO는 모바일 앱, TV 앱, 소비자 웹사이트 서비스를 모두 공식 종료하며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했다. 뮤직비디오 제국을 꿈꿨던 VEVO는 자체 플랫폼을 폐기하고, 유튜브 생태계 내의 단순한 '뮤직비디오 유통사(채널)'로 전락했다. 최근에는 아티스트 공식 채널로 통합되면서 채널명에서도 VEVO가 사라지고 화면 하단의 워터마크로만 남게 되었다.유령고구마 채널은 VEVO의 역사에 대해 "아무리 위대하고 독보적인 콘텐츠 권력을 쥐고 있어도, 대중이 머무는 생태계(플랫폼)의 편의성을 이길 수는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과거 VEVO 로고는 메이저 기획사의 위세를 상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체 생존에는 실패했지만, 오늘날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스스로 만든 영상에 가짜 VEVO 로고를 박아 넣을 만큼, VEVO는 고퀄리티 뮤직비디오를 보증하는 영원한 낙인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