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가 직접 시장이 되어 허허벌판을 거대한 대도시로 키워내는 창조의 기쁨.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의 뿌리이자 절대 권력자였던 심시티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이 시리즈는 결국 유저들의 신뢰를 잃고...
유저가 직접 시장이 되어 허허벌판을 거대한 대도시로 키워내는 창조의 기쁨.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의 뿌리이자 절대 권력자였던 심시티 시리즈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이 시리즈는 결국 유저들의 신뢰를 잃고 역사 속으로 쓸쓸히 퇴장했다.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 코브는 최근 영상을 통해 심시티가 어떻게 탄생하고 전성기를 누렸으며, 어떤 뼈아픈 실책들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렸는지 25년간의 역사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심시티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 라이트는 1980년대 헬기 슈팅 게임 번겔링만 공격 작전을 개발하던 중, 적의 기지를 파괴하는 본 게임보다 지형과 도시를 설계하는 맵 에디터 작업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그는 여기에 시스템 다이내믹스 이론을 접목해 스스로 작동하는 유기적인 가상 생태계를 고안해 냈다.당시 게임 업계는 명확한 승리 조건이나 무찔러야 할 악당이 없는 이 기묘한 프로그램을 철저히 외면했다. 무려 4년간 방치되는 수모를 겪었으나, 1989년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심시티는 전 세계 유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정해진 결말 없이 플레이어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는 샌드박스 장르가 본격적으로 비디오 게임 역사에 뿌리내린 순간이었다.이후 입체감을 살린 심시티 2000을 거쳐 2003년 발매된 심시티 4는 밤낮의 변화와 광역 시스템을 도입하며 시리즈의 최고 명작으로 등극했다. 유저들이 직접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대한 모드를 제작할 정도로 커뮤니티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위기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무리한 외전 개발로 재정난에 빠진 개발사 맥시스는 1997년 거대 유통사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에 인수되었다.달콤한 자본의 맛을 본 유통사는 무리한 후속작 개발을 압박했다. 그 결과 외부 스튜디오 하청으로 제작된 2007년작 심시티 소사이어티는 기존 코어 유저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세밀한 인프라 관리와 재정 파탄이라는 치밀한 시뮬레이션의 뼈대를 통째로 삭제하고, 얕은 수준의 사회적 지표 관리에만 몰두하게 만든 탓이다. 도시 경영 장르의 핵심인 실패의 위험성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게임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시리즈의 명줄을 완전히 끊어놓은 결정적 패착은 2012년 화려한 복귀를 예고하며 등장한 리부트 타이틀 심시티 2013 버전이었다.당시 유통사는 불법 복제 방지와 연산 분산을 명분으로 상시 온라인 연결을 강제했다. 하지만 준비된 서버는 전 세계 유저의 트래픽을 견디지 못하고 출시 직후 연쇄적으로 마비되었다. 게임에 접속조차 하지 못하거나 밤새 키운 도시가 증발하는 참사가 속출했다.새롭게 도입된 글래스박스 엔진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과부하를 막기 위해 도시의 크기는 가로세로 2킬로미터로 극단적으로 축소되었으며, 시민 개개인을 추적한다던 인공지능은 고정된 직장이나 집 없이 무조건 가까운 곳으로만 이동하는 멍청한 최단 거리 알고리즘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도시는 끔찍한 교통지옥으로 변모했고, 유저들을 기만한 기술적 결함과 미숙한 운영은 프랜차이즈의 명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심시티가 자멸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쟁사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와 개발사 콜로설 오더는 2015년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출시했다. 유저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던 거대한 맵과 정교한 교통 시뮬레이션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이 게임은 단숨에 장르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하며 심시티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결국 유통사 EA는 2015년 심시티의 고향인 맥시스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모바일용으로 출시된 심시티 빌드잇이 막대한 현금을 벌어다 주기는 했으나, 이는 건물을 짓기 위해 수십 분을 대기해야 하는 전형적인 양산형 과금 모델에 불과했다. 텅 빈 대지 위에 첫 도로를 깔며 벅찬 창조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던 본연의 낭만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위대한 개척자였던 심시티의 초라한 몰락은, 거대 자본이 유저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게임의 본질적 철학을 훼손할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반면교사로 게임 역사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