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부 팽만, 복통, 변비, 설사.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만성 장 트러블이다. 스트레스와 자극적인 식습관이 주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장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영양제로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을 챙겨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삼키는 유...
복부 팽만, 복통, 변비, 설사.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만성 장 트러블이다. 스트레스와 자극적인 식습관이 주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장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영양제로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을 챙겨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삼키는 유산균 캡슐은 정말 기대만큼 장을 건강하게 만들어줄까?지난 20일, 서울대학교병원 공식 유튜브 채널 '서울대병원tv'는 과학 유튜버 '사물궁이'와 협업한 영상("유산균 먹으면 장 건강해질까?")을 통해 대중이 가진 유산균에 대한 환상을 과학적·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낱낱이 해부했다. 본지는 해당 영상을 바탕으로 유산균의 실제 효능과 한계, 그리고 올바른 장 건강 관리법을 심층 분석했다.
우리가 유산균을 먹으며 기대하는 효과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개선, 면역력 강화, 나아가 체중 감량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장 건강 개선 효과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유산균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항생제 복용 시 발생하는 설사를 예방하거나, 일부 감염성 설사의 증상 기간을 단축하는 데에는 분명한 효능이 입증되었다.그러나 그 외의 광범위한 질환이나 면역력 개선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일관되지 않거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소화기학회(AGA) 가이드라인 역시 대부분의 장 질환 상황에서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을 강하게 권고하지 않고 있다.
유산균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인체의 방어 시스템과 장내 생태계의 배타성 때문이다.첫 번째 난관은 위산이다. 공복 상태의 위는 pH 1~2의 강력한 산성 환경으로, 락토바실러스나 비피도박테리움 계열 유산균이 노출될 경우 수분 내에 생존율이 급감한다. 담즙의 공격도 버텨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약사들은 장용 코팅이나 마이크로 캡슐화 기술을 적용하지만, 진짜 문제는 장에 도달한 이후다.인간의 장에는 이미 수십조 개의 미생물이 고도로 복잡하고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외부에서 투입된 소수의 유산균이 기존 세균과의 생존 경쟁(텃세)에서 이겨 장벽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에 따르면 유산균은 복용하는 동안에만 대변에서 검출될 뿐, 복용을 중단하면 수일에서 수주 내에 자취를 감추는 일시적 방문객에 불과하다.
2018년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연구는 유산균의 한계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동일한 유산균을 복용하더라도 사람의 유전자 발현과 기존 장내 미생물 구성에 따라 장내 정착 정도가 극명하게 달랐던 것이다. 즉, 남에게 좋은 유산균이 나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 있다.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학계와 산업계는 다른 대안에 주목하고 있다. 외부 균을 주입하는 대신, 내 장에 이미 살고 있는 유익균에게 먹이를 주어 증식을 돕는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그리고 살아있는 균의 생존 문제를 건너뛰고 세균이 만들어낸 유효한 대사산물 자체를 섭취하는 '포스트바이오틱스(Postbiotics)'가 그것이다. 포스트바이오틱스는 산성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표준화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산균을 먹고 장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후기는 모두 거짓일까?전문가들은 이를 '건강한 생활 습관의 동반 효과'로 해석한다. 건강에 관심이 생겨 유산균을 챙겨 먹기 시작한 사람은 대개 식단 관리를 병행하고, 운동을 하며, 수면 시간을 늘리는 등 긍정적인 생활 습관 교정을 함께 시도하기 마련이다. 결국 장이 편안해진 진짜 이유는 유산균 한 알이 아니라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개선 덕분일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인체의 장내 미생물 시스템은 아직 인류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복잡한 우주와 같다. 유산균은 특정 질환이나 상황에서 제한적인 도움을 주는 보조제일 뿐, 무너진 생태계를 단숨에 복구하는 마법의 약이 될 수는 없다. 내 몸에 맞는 균주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장내 유익균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체내 환경(식이섬유 섭취, 스트레스 관리)을 조성하는 것이 진정한 장 건강의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