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위에서 메스를 든 전신마비 치과의사 이규환, 편견을 뚫고 명의가 되다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최근 강연을 통해 2002년 수영장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이후 겪은 고통과, 이를 견뎌내고 치과의사로 우뚝 선 20년의 과정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수영장 사고로 멈춘 시간, 치과의사 되겠다 2002년 여름, 촉망받던 치과대학 학생...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최근 강연을 통해 2002년 수영장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이후 겪은 고통과, 이를 견뎌내고 치과의사로 우뚝 선 20년의 과정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수영장 사고로 멈춘 시간, 치과의사 되겠다

2002년 여름, 촉망받던 치과대학 학생의 삶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집혔다. 더위를 식히러 간 수영장에서 다이빙 중 목뼈가 부러진 것이다. 영구적 전신마비(목 아래의 신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 진단을 받고 눈을 뜬 중환자실은 지옥이었다. 목 밑으로는 감각이 사라졌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끔찍한 통증이 이어졌다.이 교수는 죽으려고 혀를 깨물기도 했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의사라는 진짜 꿈을 찾았다. 사지 마비 상태에서도 일념 하나로, 다친 지 1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당시 모두가 반대하는 냉대 속에서도 한 교수의 지지가 그를 다시 일으켰다.

썩어가는 엉덩이와 괴물 손… 지독한 버티기

복학 후의 삶은 그야말로 생존을 건 지독한 사투에 가까웠다. 척수 마비로 감각을 잃은 탓에 하루 16시간씩 앉아 공부하다 심각한 욕창이 생겼다. 주먹이 들어갈 만큼 살이 썩고 패혈증(미생물 감염에 의해 온몸에 심각한 염증이 생기는 병)이 퍼졌다.그럼에도 휴학 처리를 막기 위해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수술마저 방학으로 미뤘다. 무사히 면허증을 땄지만, 손을 못 쓰는 의사를 고용하려는 병원은 없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병원에 수십 번 연락해 마침내 한 번의 기회를 얻어냈다. 진료 기구를 고정하는 도구를 세계 최초로 독자 발명했다. 이후 손이 괴물 손처럼 흉하게 변할 정도로 수만 번을 연습해 신체적 한계를 넘어섰다.

차별의 시선 넘어, 가장 안전한 의사로

병원 진료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20년 전의 사회적 시선은 혹독했다. 환자들이 장애인이 진료한다며 거세게 항의하거나 침을 뱉고 나가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진료 전 환자들에게 느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정확하게 진료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지독한 버티기가 6개월을 넘기자 상황은 기적처럼 반전됐다. 그의 꼼꼼함이 입소문을 타며 오히려 그를 콕 집어 지명해 찾는 환자들이 급증했다. 단순히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서사를 넘어섰다. 의료 소비자에게 확고한 신뢰를 제공하며 진정한 명의로 거듭난 순간이다.

전망

의료계 내부에서는 중증 장애인의 전문직 진출 사례가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이규환 교수의 서사는 보조 공학 기기와 개인의 굳은 의지가 결합할 때, 최고 수준의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완벽히 증명했다. 향후 기술 발달로 제2, 제3의 이 교수 사례가 등장할 확률은 과거보다 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