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김민경 편집자 "어차피 망한 커리어, 좋아하는 걸 찾았죠" 컨텐츠서퍼

31살 신입, 지각생의 과목 선택법 그는 기자 준비를 5~6년간 하며 최종 면접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당시 여자 신입 나이로 31살은 취업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인생이 망했다고 자책할 무렵 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SBI)에 들어갔다. 기존 매몰 비용에 얽매이기...

31살 신입, 지각생의 과목 선택법

그는 기자 준비를 5~6년간 하며 최종 면접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당시 여자 신입 나이로 31살은 취업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인생이 망했다고 자책할 무렵 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SBI)에 들어갔다. 기존 매몰 비용에 얽매이기보다 책을 좋아한다는 일차원적 이유로 출판 편집자의 길을 택했다.학교에 한 시간 지각하면 어차피 늦은 김에 좋아하는 3교시 과목만 들었다. 그의 취업 돌파 과정도 이와 비슷했다. 대형 지각생이라는 사실을 덤덤히 인정하고 마음을 비웠다. 억지로 멋진 이유를 포장하지 않은 솔직함이 그를 버티게 한 굳건한 힘이었다. 실패의 늪에서 허우적대기보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특유의 유쾌함이 돋보인다.

우물을 탈출한 콘텐츠 서퍼

흔히 전문가라면 하나의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덕후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덕후가 아닌 '콘텐츠 서퍼'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독서 노트를 쓰거나 관련 굿즈를 모으는 꼼꼼한 아카이빙 작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다양한 미디어를 가볍게 소비한다.한때는 얕은 지식을 버리고 취향을 고급화하려는 은밀한 욕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의식의 좁은 우물에 갇혀 내 생각만 맞다고 고집하는 모습이 멋없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경직되는 것을 막고자 의도적으로 마음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재미새가 쏘아 올린 마케팅 혁신

일각에서는 얕은 지식의 파편화가 깊은 사유를 방해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출판 현장의 체감 온도는 확실히 다르다. 오히려 갇히지 않은 열린 개방성이 대중과의 접점을 폭넓게 넓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광폭의 얕은 취향은 실제 기획 업무에서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도서전 신간 홍보를 위해 그가 낸 아이디어는 중국발 유행을 과감히 차용했다. 인터넷 유명인을 뜻하는 '왕홍'의 쇼츠(1분 이내 짧은 영상) 형식을 거침없이 패러디한 것이다. 30초 동안 표지와 양장본의 특징만 빠르게 보여주는 엉뚱한 방식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무거운 고전의 이미지에 가벼운 B급 감성을 입혀 타격감을 높인 셈이다.그는 대화 중 돈에 미친 사람을 뜻하는 은어인 '돈미새'를 언급했다. 대신 자신은 재미에 살고 죽는 '재미새'라고 유쾌하게 자처했다. 경제나 경영서를 읽으면 돈과 불필요하게 친숙해질까 봐 소설만 편식한다는 농담도 건넨다. 당장의 도서 매출 압박보다 대중에게 어떻게 웃음을 줄지 고민하는 뼛속 깊은 웃음 사냥꾼의 면모다.

얕고 넓은 연결고리의 힘

미래 노동 시장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흩어진 점들을 연결하는 융합적 통찰력이다. 단순한 지식 축적이나 좁고 깊은 전문성은 인공지능이 상당 부분 완벽히 대체할 확률이 높다. 수학적 확률론에 따르더라도, 투입되는 영감의 변수가 다양할수록 혁신적 결과값이 도출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커진다.전혀 다른 영역의 이질적인 트렌드를 엮어내는 기획력의 경제적 가치는 앞으로 더욱 치솟을 것이다.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대중의 흥미를 유연하게 포착하는 방식이 미래 지식 산업의 훌륭한 생존 표준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