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신형철 교수가 밝힌 장편 문학의 쓸모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가 일상을 장악한 2026년 8월, 인공지능(AI)이 소설까지 대필하는 시대에 서울대학교 신형철 교수가 긴 호흡의 문학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역설하며 독서와 사유의 본질적 회복을 제안하고 나섰다....
유튜브와 숏폼 콘텐츠가 일상을 장악한 2026년 8월, 인공지능(AI)이 소설까지 대필하는 시대에 서울대학교 신형철 교수가 긴 호흡의 문학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역설하며 독서와 사유의 본질적 회복을 제안하고 나섰다.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2024년 4월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43.0%에 그쳤다. 성인 10명 중 약 6명이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셈이다. 반면 스마트폰 하루 평균 이용 시간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률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이처럼 바쁜 현대인에게 3분짜리 유튜브 결말 포함 영상이나 한 장짜리 도서 요약본은 거부하기 힘든 효율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시간을 아끼면서 핵심 줄거리만 빠르게 파악하려는 욕구가 보편화된 탓이다. 하지만 효율성만 좇는 텍스트 소비가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타인을 헤아리는 문해력을 점차 갉아먹는다는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는 300~500쪽 분량의 소설은 바쁜 일상에서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 쉽다. OTT에서 배속 재생으로 드라마를 보고 책 요약본을 훑는 이들이 늘어난 이유다. 짧은 시간에 정보를 얻는 방식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공식처럼 즉각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10년 전 겪었던 상처와 슬픔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은 수많은 사건과 시간의 맥락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장편 소설이 두꺼운 이유는 단순히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잡한 감정의 궤적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필수적인 물리적 호흡이다. 앞부분 50쪽을 읽는 데 며칠이 걸리더라도 후반부 수백 쪽을 순식간에 읽게 되는 것은 그 맥락이 연결되기 때문이다.요약본으로 줄거리만 안다고 해서 작품의 감정 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주인공의 경험을 끝까지 함께 통과하지 않으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문학이 주는 인지적 소득을 얻으려면 결국 긴 분량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미국에서는 자비 출판 소설이 AI 대필 의혹으로 출판이 취소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AI가 쓴 문장은 문법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비슷한 수식어를 세 번 연달아 쓰는 특유의 버릇도 나타난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유려함은 오히려 글을 미끄럽게 만든다. 단점이 없어 읽기는 편하지만 다 읽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알맹이가 없다. 학점으로 치면 무난한 B플러스 수준의 글에 머문다.반면 뛰어난 인간의 문학은 거친 단점을 압도하는 강력한 강점, 즉 '야생성'을 품고 있다. 조금 투박하더라도 허를 찌르는 눈부신 개성이 존재한다. 무결점의 무난함보다 결함을 뚫고 나오는 독창성이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만든다.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국 콘텐츠 저변에는 독특한 사회 심리가 깔려 있다. 바로 능력주의와 결합한 강력한 응보주의적 열망이다. 고통과 자원의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느낄수록 대리 복수에 열광하게 된다.사회적 긴장이 높은 환경에서 대중은 즉각적인 처벌 서사에 몰입한다. 악인을 잡은 뒤 가혹하게 응징하는 장면에서 손쉬운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이는 복잡한 성찰을 생략한 채 도덕적 쾌감만 극대화하는 방식이다.반면 진정한 생명력을 지닌 서사는 시스템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과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처럼 복수가 실패하며 씁쓸한 질문을 남길 때 성찰이 시작된다. 사이다와 고구마라는 단순한 이분법만으로는 인간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다.유행을 타는 유행어는 시대가 바뀌면 빠르게 휘발된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근원적 감정을 탐구한 이야기는 수십 년이 흘러도 살아남는다. 보편적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줄 때 서사의 생명력은 길어진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추천하는 알고리즘으로 채워져 있다. 독서마저 나와 마음이 통하는 주인공만 골라 읽는 정서적 동일시에 머물기 쉽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쉽게 책장을 덮어버린다.그러나 나와 꼭 닮은 대상에게만 몰입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이다. 진정한 독서는 감정적 일체감이 깨지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타자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따라가는 '인지적 공감'이 요구된다.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다아시는 자신을 오해한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보내며 감정이 아닌 정의감에 호소한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상대의 맥락을 공정하게 읽어낼 때 편견의 벽이 허물어진다.이해를 뜻하는 영어 단어(Understand)의 본래 의미처럼 독서는 타인의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다. 상대방을 이기려 들지 않고 기꺼이 져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태도다. 약점을 지닌 타인을 혐오하지 않는 힘이야말로 긴 글 읽기가 주는 궁극적 결실이다.
OECD가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2024년 12월 발표)를 살펴보면 복잡한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성인 고위 문해력 비율은 장기 정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텍스트의 단순 요약 소비와 숏폼 미디어 의존도가 현 추세대로 지속될 경우, 수학적·통계적 확률 모형상 향후 5년 내 다층적 맥락을 독해하는 심층 문해력 보유 인구 비율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70% 이상으로 관측된다.반면 단기 도파민형 텍스트 소비를 멈추고 월 1권 이상의 장편 텍스트 완독을 실천하는 집단은 알고리즘 확증편향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과의 복합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요약본의 편리함을 넘어 500쪽 텍스트를 끝까지 관통하는 끈기가 현대 지성인의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