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 저녁 먹는 스페인의 낭만… 그 이면에 숨겨진 히틀러와 빈곤의 역사

스페인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가장 크게 당황하는 문화 중 하나는 바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특유의 만찬 문화다. 이웃한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스페인의 식당들은 비로소 불을 밝히고 활기를 띤다. 유튜브 지식 정보...

스페인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가장 크게 당황하는 문화 중 하나는 바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특유의 만찬 문화다. 이웃한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스페인의 식당들은 비로소 불을 밝히고 활기를 띤다.유튜브 지식 정보 채널 지식한잔은 최근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스페인의 지연된 일과가 단순한 여유로움이 아닌, 파시스트 독재 정권의 잔재와 극심한 빈곤이 낳은 역사적 산물임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엇갈린 태양과 시계, 프랑코와 히틀러의 밀월

스페인의 영토는 지리적으로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서쪽에 위치해 있어 본래 영국과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베리아반도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 포르투갈 역시 영국과 동일한 시간대를 쓴다.하지만 1940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내전 당시 자신을 지원해 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답하고 정치적 연대감을 표하기 위해 전국의 시계바늘을 한 시간 앞당겨 독일 베를린의 중앙유럽 표준시로 강제 조정했다.전쟁이 끝난 후 주변국의 에너지 절약 정책 등 복잡한 외교적 상황이 얽히며 스페인의 시계는 영원히 독일에 맞춰진 채 굳어버렸다. 이로 인해 스페인 국민들은 태양의 주기와 법적 시간 사이에 최대 두 시간의 거대한 괴리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낮잠의 비극적 진실과 두 탕 뛰는 노동자들

스페인의 일과를 더욱 뒤로 미룬 것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극심한 경제적 궁핍이었다. 내전의 상처로 국가 경제가 피폐해지면서 노동자들은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에 두 개의 직장을 다녀야만 했다.현대인들이 여유로운 낮잠 시간으로 알고 있는 시에스타 문화는 당시 도시 노동자들에게 첫 번째 직장에서 퇴근해 급하게 끼니를 때우고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한 처절한 징검다리 시간에 불과했다.결국 밤 8시가 넘어서야 하루의 모든 노동이 끝나는 가혹한 분할 근무 문화가 사회 전반에 고착화되었고, 자연스럽게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식사 시간도 밤 9시에서 11시 사이로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건강권 침해 논란에도 시간대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기형적인 시간대는 스페인 국민들의 생체 리듬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겨울철 스페인 서부 지역은 아침 9시가 되어도 한밤중처럼 어두워 수면 호르몬 억제가 원활하지 않아 만성적인 아침 피로를 유발한다. 반대로 여름철에는 밤 10시 30분이 넘어야 겨우 해가 지는 현상이 펼쳐진다.이에 스페인 의회는 2013년과 2016년 프랑코 체제의 조치를 무효화하고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려 건강한 생체 리듬을 되찾자는 대국민 타협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 앞에 번번이 무산되었다.스페인은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관광업과 요식업에 의존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늦춰진 일몰 덕분에 밤늦게까지 야외 테라스에 앉아 소비를 즐기는 관광객들의 지갑이 끊임없이 열리기 때문이다. 시계를 원래대로 돌려 해가 일찍 지게 만들면 소상공인들의 막대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나아가 독재와 가난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일과가 이제는 스페인 특유의 여유와 낭만을 상징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날 밤늦게 샹그리아를 마시며 타파스를 즐기는 스페인의 화려한 식탁 위에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노동자들의 애환과 독재 권력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