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팽팽한 긴장을 막아주던 최후의 보루, 비무장지대(DMZ)에 전례 없는 지형적 변화가 일고 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바로 코앞까지 울창한 숲을 밀어버리고 대규모 전술도로를 개설하면서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징후로 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73년간 유지되...
한반도의 팽팽한 긴장을 막아주던 최후의 보루, 비무장지대(DMZ)에 전례 없는 지형적 변화가 일고 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바로 코앞까지 울창한 숲을 밀어버리고 대규모 전술도로를 개설하면서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징후로 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73년간 유지되어 온 완충지대의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안팎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KBS의 디지털 뉴스 채널 '크랩 KLAB'은 지난 28일 게재한 영상("요즘 심상치 않다는 휴전선 근황, 진짜 괜찮을까?")을 통해 북한의 최근 DMZ 내 전술도로 개설 현황과 그 배경, 그리고 우리 군에 미칠 파장을 심층 보도했다. 본지는 해당 영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엇갈리는 정전협정 해석과 한반도 안보 지형의 변화를 다각도로 짚어보았다.
최근 위성사진 분석 결과, 북한은 남측과 맞닿은 비무장지대 북측 구역의 풀과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는 '불모화 작업'을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폭 10m가량의 차량 통행이 가능한 전술도로를 새롭게 구축했다는 점이다. 확인된 전체 도로 길이만 직선거리로 100km가 넘으며, 일부 구간은 군사분계선(MDL)에서 불과 260m 떨어진 곳까지 바짝 접근해 있다.안보 전문가들은 이를 "73년 정전협정 이후 물리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지형 변화"라고 평가한다. 그 배경에는 2023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식화한 '적대적 두 국가론'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북을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적대 국가로 규정하면서, 군사분계선 일대를 실질적인 '난공불락의 국경선'으로 요새화하려는 의도다. 전술도로는 평시 경계 작전은 물론, 전시 병력과 장비를 신속히 남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작용한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각각 2km씩 설정된 비무장지대는 군사 활동이 엄격히 제한된 구역이다. 국방부는 북한의 이번 장애물 및 도로 설치를 "완충지대를 무력화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강력히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해석은 온도 차를 보인다. 영상에 따르면 유엔사는 "도로 건설이나 철책 설치 등은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단순 조치일 뿐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이러한 입장 차이는 정전협정 위반을 가늠하는 '기준'에서 기인한다. 우리 군은 비무장지대의 설립 취지(완충) 자체가 훼손되었다는 데 방점을 찍는 반면, 유엔사는 과거 한국 측 역시 DMZ 내 도로와 울타리를 설치했던 전례를 들어 남북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유엔사는 적군이 군사분계선을 직접 침범하거나 중화기를 반입하는 등 실제적인 군사적 위협 행위가 발생해야만 명백한 위반으로 간주하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전술도로의 등장이 곧장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은 우발적 무력 충돌의 위험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경고한다.과거에는 수풀과 장벽이 가로막혀 있어 상호 접근이 어려웠으나, 이제는 뻥 뚫린 도로를 통해 북한 병력이 군사분계선 인근까지 대규모로, 그리고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병력 배치가 전진하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상대방의 사소한 움직임을 '도발'로 오인하여 경고사격이나 교전으로 비화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결과적으로 북한의 이번 조치는 정전협정상의 완충지대라는 DMZ의 기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달라진 지형과 작전 환경에 맞춰 우리 군도 대응 전략을 시급히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숲에 가려져 있던 기존 좌표 체계를 전술도로 환경에 맞게 최신화하고, 전방 감시 및 정찰 자산(감시 카메라, 열상 장비, 드론 등)을 재배치하여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물리적 장벽이 사라진 자리에 팽팽한 군사적 긴장감이 들어서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의 실체화가 휴전선 턱밑까지 다가온 지금, 한반도의 평화 관리 시스템이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