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율 99.9%의 이면, 일본 사법부의 짙은 그림자 '엔자이(冤罪)'

2025년 3월, 일본 형사보상 역사상 최고액인 약 2억 1,736만 엔(한화 약 20억 원)이 한 노인에게 지급됐다. 그는 전직 프로 복서이자 공장 직원이던 '하카마다 이와오(89)'. 잘못된 재판으로 인해 무려 40년 넘게 사형수 신분으로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억울...

2025년 3월, 일본 형사보상 역사상 최고액인 약 2억 1,736만 엔(한화 약 20억 원)이 한 노인에게 지급됐다. 그는 전직 프로 복서이자 공장 직원이던 '하카마다 이와오(89)'. 잘못된 재판으로 인해 무려 40년 넘게 사형수 신분으로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억울한 누명, 즉 '엔자이(冤罪)'의 대표적 희생자다.왜 유독 일본에서는 이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엔자이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유튜브 채널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는 지난 1일 공개한 영상("'유죄율 99%' 일단 재판가면 유죄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일본 엔자이'")을 통해 일본 사법 시스템의 기형적인 구조와 역사적 배경을 심층 분석했다. 본지는 해당 영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99.9% 유죄율 뒤에 숨겨진 구조적 폭력을 짚어보았다.

기소=유죄? 전 세계 유례없는 99.9% 유죄율의 함정

일본 법무성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4년 일본에서 재판이 확정된 20만 3,801명 중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96명(0.05%)에 불과했다. 유죄율이 무려 99.95%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독재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수치다.일본 사법 당국은 이를 "검찰이 확실한 증거가 있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이라는 이른바 '정밀 사법'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유튜버는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엔자이 사건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애초에 재판이 유무죄를 가리는 공방의 장이 아니라, 수사 기관에서 이미 결정된 유죄를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자백에 집착하는 에도 시대의 유산

이러한 기형적 사법 구조의 뿌리는 일본 에도 시대의 재판 제도인 '긴미스지(吟味筋)'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수사관과 판사의 역할이 분리되지 않았고, 사법의 목적 자체가 진실 규명보다는 통치자에 대한 복종과 공동체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특히 당시는 아무리 증거가 없어도 자백만 받아내면 유죄가 성립됐다. 반대로 증거가 차고 넘쳐도 자백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고문과 협박을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자백을 받아내는 수사 관행이 뿌리내렸다. 현대 일본의 사법부 역시 겉모습은 서구의 제도를 차용했으나, 실질적인 운용은 여전히 이 '자백 중심주의'와 갱생을 빙자한 온정주의라는 과거의 관습에 얽매여 있다는 분석이다.

허위 자백을 짜내는 합법적 고문, 대용 감옥 제도

현대 일본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자백을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용 감옥(인치장)' 제도다.경찰은 피의자를 최장 23일 동안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별건으로 재체포를 반복하면 이 구금 기간이 무한정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3년 가고시마현에서 발생한 시부시 사건의 경우, 무고한 주민이 395일 동안 갇혀 있다가 결국 거짓 자백을 하고 전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이 긴 구금 기간 동안 변호사는 취조실에 동석할 권리가 없으며, 피의자의 30~40%는 가족과의 접견조차 금지된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가해지는 경찰의 압박과 회유 앞에서 피의자는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결국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끝내기 위해" 거짓 자백을 문서로 남기게 되는 것이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원칙의 실종

경찰에서 만들어진 허위 자백은 검찰과 법원을 거치며 '강력한 유죄의 증거'로 탈바꿈한다. 수사부터 판결까지 국가 기관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력화시킨다.물론 대다수의 기소 건은 실제 범죄자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더라도 범죄자는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는 위험한 시스템이 굴러가는 한, 제2, 제3의 하카마다 이와오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일본 사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으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개혁의 길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99.9%라는 완벽해 보이는 숫자는 결국, 단 0.1%의 무고한 생명을 짓밟고 세워진 사상누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