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트렌드 연말결산] AI가 코딩할 때, 인간은 낭만을 쫓아 뛴다 : 효율성 과잉 시대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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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스마트하지만, 동시에 가장 외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챗GPT가 업무 메일을 쓰고, 배달 앱이 저녁 메뉴를 골라주는 초효율 사회가 도래했지만,
정작 인간은 땀 흘려 뛰는 마라톤에 열광하고, 새벽부터 '던전앤파이터' 페스티벌에 줄을 선다. 송길영 작가(마인드 마이너)와 이종범 웹툰 작가는 이를 '효율에 지친 인류가 본능적으로 낭만이라는 비상구를 찾기 시작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초고령 사회(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한 한국. 1인 가구 800만 시대, 파편화된 개인들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진짜 경험과 생존 근육을 찾아 나서고 있다.
효율은 기본값, 낭만은 프리미엄이 되다
과거 비효율은 게으름의 상징이었지만, 2025년엔 귀족적 유희가 됐다.
이종범 작가는 "웹소설과 웹툰에서 최근 '낭만'이라는 키워드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모두가 효율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굳이 시간을 들여 손편지를 쓰거나 필름 카메라를 찍는 행위가 오히려 힙한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송길영 작가는 이를 시뮬레이션 과잉의 반작용으로 해석했다.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를 이미 다 아는 세상이잖아요. 실패를 제거한 삶은 편하지만, 감동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한 땀 한 땀의 장인 정신, 즉 라이브한 경험에 지갑을 엽니다."
실제로 최근 공연, 뮤지컬,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시장의 성장은 가파르다. 디지털 세상의 '복제된 경험'에 질린 대중이 현장의 땀방울과 실수마저 포함된 날 것의 콘텐츠를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핵개인'의 탄생... 혈연보다 끈끈한 취향 부족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전체의 36.1%(804만 가구)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은 고립되지 않았다. 송길영 작가가 정의한 '핵개인(Nuclear Individual)'들은 혈연이나 지연 대신, 철저히 취향을 중심으로 뭉친다.
[ 핵개인의 특징 ]
- 의사결정권 : 부모나 상사의 뜻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해 선택한다.
- 취향 공동체 : 나이·직업 불문, 같은 아이돌 포카(포토카드)를 교환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 상호 존중 : 수직적 서열(회장님-총무) 대신 수평적 '크루(Crew)' 문화를 지향한다.
이종범 작가는 "과거 조기축구회가 형님 문화였다면, 지금의 러닝 크루는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함께 달리고 쿨하게 헤어진다"며 "깊은 개입은 부담스럽지만, 외로움은 싫은 현대인의 '안전한 연대'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지적한 '옴니보어(Omnivores, 잡식성 소비자)'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나이와 소득의 경계가 무너지고, 취향만이 유일한 신분증이 되는 세상이다.
오래 살아야 하니까... 저속노화는 생존 본능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는 이제 유행을 넘어 생존 전략이 됐다. 정희원 아산병원 교수가 주창한 '저속노화' 식단이 2030 세대에게 번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대 수명이 100세를 넘보는 상황에서, 아픈 노년은 축복이 아닌 재앙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송 작가는 "지금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건 오직 자신의 '코어 근육'과 '통장 잔고'뿐"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2024년 건기식 시장 규모는 6조 원을 유지하고 있으며, 구매 경험률은 82.1%에 육박한다.
흥미로운 점은 운동의 목적이 '보여주기식 바디프로필'에서 '실전 압축 근육'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크로스핏이나 '하이록스(Hyrox)' 같은 고강도 기능성 운동 대회에 열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내 몸뚱아리 하나로 버텨내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다름없다.
AI 시대, 결국 답은 인간이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가치가 희소성을 띠며 가격이 오른다. 2025년의 트렌드는 명확하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진짜'를 찾는 여정이다.
AI는 1초 만에 소설을 써내지만, 작가의 고뇌가 담긴 육필 원고의 감동은 주지 못한다. 알고리즘은 완벽한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주지만, 친구와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듣는 음악의 떨림은 재현하지 못한다.
송길영, 이종범 두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효율은 AI에게 맡겨라. 대신 남은 시간으로 당신만의 '낭만'을 찾고, 취향이 맞는 '부족'을 만나며, 건강한 육체를 만들어라." 그것이 0과 1의 세상에서 우리가 멸종하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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