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공용 화장실 '모두의 화장실 확대'… 진보인가, 혼란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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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 앞에 다섯 개의 픽토그램이 나란히 서 있다.
치마 입은 사람, 바지 입은 사람, 치마와 바지가 반반씩 섞인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그리고 기저귀 가는 사람. 이곳은 단지 화장실이 아니다. 누군가는 '인권의 전환점'이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불안한 실험실'이라 부른다. 이른바, '모두의 화장실'이다.
성별 구분 없는 공간, 국내 첫 도입
성공회대학교는 지난 16일, 국내 대학 최초로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을 공식 개방했다.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공간은 기존의 '남녀 공용 화장실'을 넘어선 확장된 포용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내부는 단순하지 않다.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는 1인실 구조, 샤워기와 간이 의자, 기저귀 교환대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이용자와 마주칠 일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트랜스젠더, 장애인, 유아를 동반한 부모까지 ― 그동안 '일반적인 화장실'에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기관·학교명 | 설치 시기 | 특징 및 상황 |
KAIST | 2023년 12월 | 총 6개 화장실 설치, 포용성위원회 주도 |
서울대 | 2026년 예정 | 문화관 리노베이션에 포함된 계획 |
한예종 | 설치 준비 중 | 학생·단체 주도로 홍보 활동 활발 |
산청간디학교, 인권단체 | 설치 추진 중 | 지방 대안교육·시민사회에서도 확산 중 |
성소수자, 장애인, 보호자… '드디어 나도 편하게 간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36%가 '시선이나 차별이 두려워 화장실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기존 화장실에서 세면대 접근이 어려운 사례도 빈번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
거울의 각도는 조절 가능하고, 자동문 버튼은 어린이나 휠체어 사용자 키에 맞춰 낮게 설치됐다. 심지어 월경컵 세척을 위한 공간 배치까지 고려됐다. 이것은 단순히 화장실이 아니다. '당신도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공간으로 구현한 선언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박수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성공회대에서 이 화장실이 완공되기까지는 5년의 논쟁과 반발이 있었다.
학내 토론회에서는 '굳이 이런 공간을 왜 만들어야 하느냐',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 '기존 남녀 화장실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냐'는 반응이 거셌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는 '성범죄 예방을 위해선 성별 분리가 기본'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경찰과 일부 보수단체는 '불법 촬영에 더 취약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제도는 아직 낡았다
현재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남녀 분리 설치가 원칙이다. 예외는 연면적 660㎡ 미만의 건물이나 장애인용 화장실에 한정된다. 즉, 모두의 화장실을 공공기관에 설치하면 법령 저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변화는 제도보다 현실이 더 앞서가고 있다. 법은 여전히 남과 여, 두 개의 성별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인가, 혼란인가
찬성 측은 말한다. '모두의 화장실은 포용과 다양성의 시작이다.'
그러나 반대 측은 되묻는다. '진보란 이름으로 불안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누구나 쓰는 화장실'이, 정말로 모두에게 편한 공간인가?
트랜스젠더가 편해진 대신 여성 이용자는 불안을 느끼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보호자는 오해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 공간은 진보인가 타협인가, 혹은 또 다른 배제의 구조인가.
사회가 답을 내야 할 차례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은 이미 '젠더 뉴트럴' 혹은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화장실을 공공시설 및 대학가 중심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사생활 보호와 범죄 예방, 문화적 인식의 충돌 사이에서 해답을 찾는 중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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