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가 사라진 도시, 우리는 왜 카페로 밀려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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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셜록현준(@Sherlock_HJ)'은 건축가이자 교수인 유현준이 운영하는 도시·건축 해설 채널이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공간을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바라보며 건축을 사회 구조와 연결해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벤치, 아파트, 학교 운동장처럼 사소해 보이는 요소를 통해 공공성, 공동체, 계층 문제까지 확장한다.


콘텐츠는 하나의 문제 제기로 시작해 해외 사례와 개인 경험을 교차하며 논리를 쌓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문 용어를 최소화하면서도 도시를 해석하는 기준을 제시해 시청자가 공간을 소비자가 아닌 분석자의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건축 채널이지만 결국 사람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채널이라는 점이 정체성이다.


공통의 추억이 사라진 도시의 단면

도시는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 이동은 빨라졌고, 상업 시설은 촘촘해졌으며, 돈을 쓰는 공간은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아무 조건 없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다. 공원은 멀고 도서관은 한정적이며 길 위에는 벤치가 드물다. 움직이는 공간은 많지만 머무는 공간은 부족한 도시다.


이 결핍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줄어들수록 사회는 공통의 기억을 잃는다. 과거 국민 드라마를 함께 보며 다음 날 같은 이야기를 나누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각자 다른 알고리즘 속에 갇혀 있다. 온라인에서 분화된 취향은 오프라인에서도 겹치지 않는다. 공통의 추억이 줄어들수록 사회는 더 쉽게 갈라진다.


벤치가 줄어들면 카페가 늘어난다

벤치가 부족한 도시는 사람들을 상업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길을 걷다 다리가 아프면 어디로 향하는가. 카페다. 돈을 내야만 앉을 수 있는 구조가 당연해졌다. 서울이 단위 면적당 커피숍이 많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이런 구조가 있다.


이 구조의 문제는 명확하다. 앉는 공간이 유료일 때, 소득에 따라 머무는 장소가 달라진다. 비싼 카페와 저가 매장은 서로 다른 집단을 분리한다. 노래방, PC방, 멀티방처럼 ‘방’으로 끝나는 공간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시는 공공의 의자를 줄였고 시민은 사적인 좌석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공통의 추억은 줄고, 계층의 경계는 두터워진다.


‘세상의 모든 벤치’ 프로젝트가 던진 질문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 ‘세상의 모든 벤치’ 프로젝트다. 강남구청과 협력해 테헤란로에 수십 개의 벤치를 설치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쉽게 머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어 진행된 ‘장애인과 함께 앉는 벤치’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방향을 더 구체화했다. 현대제철의 후원 아래 제작된 벤치는 등받이를 없애 설치 밀도를 높였고 한 장의 철판 구조로 제작해 비용을 줄였다. 일반 좌석 옆에 휠체어 공간을 비워 두고 컵홀더를 배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도록 설계했다. 빈 공간 자체가 ‘함께 쓰는 자리’임을 드러내는 장치다. 재료는 온도 변화가 적은 나무를 사용해 기후 적응성을 높였다.


비어 있는 벤치가 주는 심리적 옵션

벤치가 실제로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가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비어 있는 벤치 하나는 도시가 시민에게 제공하는 옵션이다. 옵션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심리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은 자동차 소유 증가와도 연결된다. 도시 안에 머무를 공간이 없으면 사람들은 차량이라는 사적 공간을 구매한다. 공공 좌석의 부족은 개인 좌석의 구매로 이어진다. 공원, 도서관, 벤치가 충분하다면 사적 공간에 대한 과잉 욕구는 완화될 수 있다. 벤치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사회 간접 자본의 일부다.


관리의 문제인가, 의지의 문제인가

벤치가 사라진 이유로 관리 부담이 지목된다. 설치하면 청소와 민원이 뒤따른다. 쓰레기통이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리 주체의 부담이 정책을 좌우한다. 그러나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머무는 공간 자체를 줄이는 선택은 도시의 장기적 비용을 키운다.


노숙자 문제 역시 벤치를 없애 해결할 수 없다. 눕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물, 좁은 디자인 등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다.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뤄야지 공공 좌석을 줄이는 방식은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


단위 면적당 벤치 수가 말해주는 것

도시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가장 단순한 지표는 단위 면적당 벤치 수일지도 모른다. 뉴욕 브로드웨이 950m 구간에 170개의 벤치가 있다는 사례는 상징적이다. 같은 길이의 서울 거리와 비교하면 격차는 분명하다.


벤치는 가장 저렴한 공공 인프라다. 그러나 효과는 크다. 누구나, 소득과 무관하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공간. 그 작은 좌석 하나가 공동체의 기억을 만든다. 벤치가 늘어날 때, 도시는 비로소 움직이는 공간을 넘어 머무는 공간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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