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고아성, 연기의 깊이를 더한 '고도로 발달한 덕후'의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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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3일, 다독가로 알려진 배우 고아성이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 출연해 자신의 독서 철학과 인생 책을 공개했다. 영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개봉을 앞둔 그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연기할 때의 심적 부담감과 활자를 시각화하는 과정의 비하인드를 털어놓았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연기의 뼈대를 세우는 '수혈'로서의 독서법을 들여다본다.


집중을 부르는 '독서템'과 텍스트의 내면화


책을 읽겠다는 굳은 다짐은 종종 수면욕 앞에서 무너지기 십상이다. 고아성은 독서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한 자신만의 '독서템'으로 몸이 쏙 들어가는 캠핑 의자를 소개했다. 격식 차린 독서가 수면으로 이어지는 이들에게 캠핑 의자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작업실을 없앤 뒤 집에서도 완벽한 독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한 이 방법은, 공간의 제약을 넘어 스스로 몰입의 스위치를 켜는 실용적인 장치다.

그의 독서는 글자를 읽는 행위를 넘어 인물의 삶을 체화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최근 읽고 있는 소피 칼의 사진 에세이에 대해 그는 "뉴욕에서 역할 놀이를 하는 걸 책으로 만든 것"이라며, 현대인들 역시 일상에서 역할 놀이를 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평했다. 배우로서 타인의 삶을 빌려 입는 직업적 특성이 책을 매개로 독자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목이다.


아니 에르노와 박완서, 고약하고도 다정한 문학의 세계


고아성의 독서 취향은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가들을 향해 있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에 대해서는 고교 시절 처음 접한 뒤 전작을 섭렵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영상에서 엿볼 수 있는 고아성의 주요 추천 도서는 다음과 같다.


  •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집착』: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직설적이고 파격적인 문체로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낸 에세이
  •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 말씀만 하소서』: 한국인의 정서적 뿌리를 건드리는 유려한 문장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학적 위로
  •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미지의 행성을 탐구하며 역설적으로 인간 내면의 심연을 마주하게 되는 고전 SF(Science Fiction,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한 공상과학 소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셰프 에드워드 리에게 영어판으로 선물할 만큼 강한 울림을 주었다고 덧붙였다.


원작 소설의 영화화, 활자를 시각화하는 배우의 숙명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는 검증된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인 소설이나 웹툰을 영상화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고아성 역시 '한국이 싫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굵직한 원작 기반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그는 "텍스트로 읽은 글들을 시각화했을 때 진짜 그 사람으로 보여질까 하는 겁이 있다"며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숙명을 토로했다. 반면, 독자의 훼손되지 않은 상상력을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영상화가 문학 고유의 여백을 좁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원작 소설의 문장들은 그에게 든든한 연기의 지표가 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촬영 당시, 영화에는 직접 담기지 않은 미정의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며 인물의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활자에 갇혀 있던 인물이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행간까지 읽어내는 배우의 치열한 해석 덕분이다.


'수혈'로서의 독서, 텍스트와 영상의 상보적 진화


고아성은 책을 가리켜 "세상을 접근하는 시각을 새로이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수혈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정의했다.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깊이 있는 활자 매체는 창작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 4월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 독서율은 43.0%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감소 추세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근 미디어셀러(미디어 노출로 인기를 얻는 도서) 현상에 비추어볼 , 고아성이라는 신뢰도 높은 스피커를 통해 소개된 아니 에르노와 박완서의 도서들은 단기적으로 검색량 판매량이 20% 이상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독자가 활자를 읽고, 배우가 이를 영상으로 번역하며, 관객이 다시 활자를 찾는 상호보완적 선순환 구조는 앞으로의 콘텐츠 생태계를 한층 튼튼하게 지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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