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 1년 평균 독서량 3.9권… 읽지 않는 사회의 불안한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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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웹툰이 대신한 취미, 종이책은 사라지는 중이다. ‘읽기’가 사라진 사회는 생각하는 힘도 함께 잃는다.


책 대신 화면, 숫자가 말하는 현실

코끝에 닿는 종이 냄새가 그립다는 말은 많지만, 실제로 책장을 넘기는 손은 점점 줄고 있다. 한국의 성인은 1년에 평균 3.9권의 책만 읽는다. 절반 이상은 아예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율은 43%, 종이책 기준으로는 5.4권, 전자책은 1.4권에 불과하다. 반면 학생은 연간 36권을 읽는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책과 멀어진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 하루 평균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영상 시청 시간은 2시간 30분, 휴일엔 3시간 30분을 넘는다. 같은 조사에서 독서 시간은 평일 기준 53분이었다. 즉,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걸 보느라’다.


전자책의 약진, 하지만 종이책의 그림자

출판 시장은 여전히 종이책이 주도한다. 2023년 기준 국내 실물 도서 매출은 약 10조 7천억 원, 전자책은 1조 3천억 원 규모다. 전자책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긴 하지만 아직 전체의 13% 남짓이다. 디지털로 전환되는 세상에서도 ‘책 한 권’이라는 물성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종이책 독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훨씬 더 빠르다.


출판 생태계도 이를 체감한다. 독자는 줄고, 책은 팔리지 않으며, 유통망은 단기 트렌드에 휘둘린다. 오디오북, 웹툰, 숏폼 영상이 ‘읽는 시간’을 점점 대체한다. 이제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약간의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비일상적 일이 되어버렸다.


읽지 않는 사회, 사고력의 빈곤

문제는 단순히 독서량이 줄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읽지 않는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책은 정보를 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에서 ‘사유’를 만드는 도구다. 영상과 숏폼 콘텐츠는 빠르게 넘기지만, 책은 멈추게 한다. 그 멈춤의 순간이 사라질수록 사람은 자기 생각을 할 기회를 잃는다.


실제로 독서량과 비판적 사고력은 비례한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은 그 반대다. 빠른 정보, 짧은 문장, 즉각적인 반응이 인간의 사고 습관을 잠식하고 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읽는 힘’을 잃으면, 공론장은 얕아지고, 판단력은 피로해진다.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새로운 계급의 탄생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이미 지식 격차를 넘어 ‘문화적 계급’으로 번지고 있다. 월평균 소득 200만원 이하의 성인 독서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고소득층은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하며, 결국 더 나은 기회를 가진다. ‘독서’가 다시 계층의 표식이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독서 감소는 산업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작가의 수익구조는 약화되고, 중소 출판사는 버티지 못한다. 남는 건 대형 플랫폼의 베스트셀러 몇 권뿐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사회의 사고 구조가 단조로워진다.


책이 사라진 자리,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보는 사회’로 이동 중이다. SNS, 웹툰, 유튜브, 숏폼—모두가 우리의 시간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는 깊이의 상실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문장은 사라지고 있다.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건, 결국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독서 권장을 넘는다. ‘읽기’를 어떻게 다시 사회의 기본 습관으로 되돌릴지 고민해야 한다. 학교의 독서 교육, 공공도서관 정책, 전자책 접근성—all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읽는 인간’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확신이다. 그 믿음을 잃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문해 사회라 부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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