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바게트에 올린다고? 미국 칠리 파우더 1위?… 캔으로, 가루로, '힙'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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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념이 묻은 배추가 캔에서 쏟아져 나온다. 프랑스 파리의 한 셰프는 이 '캔김치'를 따서 바게트에 올린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24년 현재, 파리와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다.


'냄새나는 반찬' 취급을 받던 김치가 이제는 가루(시즈닝)가 되어 피자 위에 뿌려지고, 캔에 담겨 유럽 캠핑족의 필수품이 됐다. 김치는 어떻게 '할머니의 손맛'을 넘어 글로벌 '힙(Hip)' 아이콘이 되었을까.

그 화려한 비상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냉정한 현실을 짚어봤다.


파리지앵의 식탁에 오른 '코리안 스트릿'

"이태원 맛? 그게 무슨 맛이죠?" 영상 속 프랑스인 게스트 '엘디'는 '이태원 핫 스파이시 소스'를 맛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한국인조차 생소한 이 브랜드(코리안 스트릿)는 정작 프랑스 현지 마트와 온라인몰에서 'K-푸드'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핵심은 '현지화'와 '보관성'이다. 냄새가 새지 않고 상온 보관이 가능한 캔 김치는 냄새에 민감한 유럽인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현지 반응은 뜨겁다. 프랑스 파리 현지 마트에서 한국식 소스와 김치는 더 이상 '아시안 마켓' 구석이 아닌 메인 매대를 차지한다.


김치 소스에 적힌 '강남', '이태원' 같은 지역명은 마치 우리가 '나폴리 피자', '뉴욕 치즈케이크'를 소비하듯, 그들에게 하나의 트렌디한 브랜드로 소비되고 있다.


마법의 가루가 된 김치, 아마존을 홀리다

"떡볶이 팔러 필리핀 갔다가, 김치 가루로 미국을 뚫었습니다."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의 '김치 시즈닝' 성공담은 K-푸드 스타트업의 전설이 됐다. 액체 젓갈이 들어가고 발효 과정에서 가스가 차는 김치는 수출 난이도 '최상'의 품목이다. 안 대표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김치를 가루로 만들어 유산균은 살리되, 보관과 운송의 제약을 없앤 것.


결과는 대박이었다. 출시 6개월 만에 미국 아마존 '칠리 파우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피자, 팝콘, 치킨에 뿌려 먹는 '0칼로리 감칠맛 가루'에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이는 단순히 김치를 수출한 것이 아니라, 김치를 '향신료(Spice)'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재해석해 시장을 창출한 사례다. 현지 식문화 이해(피자·타코와의 궁합), 비건 인증, 글루텐 프리 등 철저한 현지 맞춤 전략이 유효한 것이다.


김치 전사의 귀환, 비웃음이 박수로

한때 '세금 낭비'라며 전 국민적 조롱을 받았던 캐릭터 '김치 워리어'의 재평가는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다. 배추 머리를 한 이 어설픈 영웅은 중국의 '김치 공정(김치는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거세지자 다시 소환됐다.


놀라운 반전은 원작자가 사비를 털어 꾸준히 중국의 문화 왜곡에 맞서는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는 사실이다. 네티즌들은 "우리가 비웃을 때 그는 홀로 싸우고 있었다"며 '김치 전사'에게 뒤늦은 경례를 보내고 있다. B급 감성의 애니메이션이 이제는 문화 주권을 수호하는 상징적인 '밈'으로 부활한 셈이다.


화려한 수출 뒤 무역 적자의 그림자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관세청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김치 수출액은 10월 기준 약 1억 3,739만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김치 무역수지는 적자다.


올해 '금배추'라 불릴 만큼 배추 가격이 폭등하자, 저렴한 중국산 김치 수입이 덩달아 역대 최대치(약 1억 5,900만 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김치는 나가고, 식당용 저가 김치는 밀려들어오는 '김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세계인의 입맛은 잡았을지 몰라도, 정작 우리 식탁의 김치 주권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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