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생활 11년차 전하는 도쿄 한복판에서 ‘호캉스’ [정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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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11년째 살다 보니,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주말 아침, 35도를 훌쩍 넘는 도쿄의 무더위 앞에서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부담스러웠다. 나들이도, 집콕도 모두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 ‘호캉스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들이 즐긴다는 그 방법을 나도 한번 따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호텔 취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길바닥에서도 잘 자는 인간이니, ‘호텔에서 쉬기라는 개념은 늘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유독 눈길을 끈 건 일본의클래식 호텔들이었다. 아인슈타인, 헬렌 켈러, 심지어 메가더 장군까지 머물렀다는 그 호텔들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관 같은 공간이었다. 벽마다 새겨진 이름과 이야기들은, 100년 넘는 일본 근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곳은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도쿄역 호텔이었다. 붉은 벽돌 건물의 2·3·4층이 사실 호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수십만 명이 오가는 이 공간 속에서, 나는 잠시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고 싶었다.

체크인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른 탓에, 호텔 근처키테(KITTE)’라는 복합몰로 발길을 돌렸다. 옛 중앙우체국 건물을 개조한 곳인데, 100년이 넘는 기둥과 바닥 타일이 일부 그대로 남아 있어, 쇼핑몰 안에서도 마치 시간 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목적은 단순했다. 식사였다. 도쿄까지 와서 소고기 덮밥, 규동 한 그릇에 2만 원을 쓰다니,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부타스라는 가게의 규동은 그 값을 충분히 했다고 느껴졌다. 싸구려 패스트푸드 이미지가 통째로 뒤집히는 경험이랄까.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가 밥과 고기에 완벽하게 어우러져, 한 입마다역시 일본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우체국 국장실부터 자연사 박물관까지, 뜻밖의 도쿄 미니 투어가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소들이, 이날만큼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솔직히호캉스를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이미 흐트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마침내 도쿄역 호텔의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압도당했다. 4미터에 달하는 천장, 창밖으로 펼쳐진 도쿄역 돔의 풍경. 한때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그 건물이, 100년 넘는 시간을 견디고 지금 내 방 창밖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하게 울컥했다. 객실 안에서 맞는 햇살과 호텔 특유의 향기, 그리고 조용히 들려오는 거리 소음까지, 모든 것이 나를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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