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 보증금 폐지 유상 판매 전환…커피값 인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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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 보증금 폐지… 유상 판매 전환

보증금제 사실상 폐기, 구입비 부과로 선회 반납해도 환불 불가… 소비자 부담 가중 논란


"컵 반납하셔도 300원 안 돌려드립니다. 컵 값을 내고 사신 거니까요."


앞으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듣게 될 대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컵 자체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유상 판매제가 도입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 장관은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탈(脫)플라스틱 종합대책 방향을 공개했다. 핵심은 컵을 무상으로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증금과 달리 반납해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는 이를 수익자 부담 원칙 강화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커피값 인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보증금제 백기 투항… 결국 돈 받고 판다

정부가 보증금제 전국 확대 카드를 버렸다.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제주와 세종에서 시범 운영됐던 보증금제는 소상공인의 반발을 샀다. 낮은 회수율과 교차 반납 문제로 표류했다.


기후부가 내놓은 대안은 판매하되 책임은 소비자가 지는 방식이다. 가격은 매장이 자율 책정한다. 정부 권고안은 생산원가를 반영한 100~200원 수준이다. 구매 비용은 환불되지 않고 소멸한다. 대신 텀블러 지참 시 약 300원 할인 인센티브를 강화한다.


김성환 장관은 "유럽의 제도를 일부 차용했으나 국내 현실에 맞춰 점주와 소비자 모두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설명했다. 보증금 라벨을 붙이고 컵을 회수해 씻어야 했던 점주들의 노동은 줄어든다. 반면 소비자의 지갑은 얇아질 전망이다.


네덜란드는 환경세… 한국은 컵값

이번 정책은 일회용품에 가격표를 붙인다는 점에서 글로벌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강력한 가격 정책을 쓰고 있다. 네덜란드는 2023년 7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시 별도 비용을 부과한다. 컵 기준 약 0.25유로(360원)다. 이는 사실상의 환경세 개념이다. 독일은 포장재법을 통해 매장에 다회용기 옵션 제공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물린다.


전문가들은 방향성엔 동의하면서도 세부 내용을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환경공학과 교수는 "보증금제는 회수가 목적이었다면 유상 판매는 사용 억제가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컵 판매 수익이 환경 기금으로 쓰일지 점주의 추가 수익이 될지에 대한 투명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그린플레이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종이컵·빨대 규제도 오락가락

혼란은 컵 가격뿐만이 아니다. 지난 정권과 현 정부 초기 오락가락했던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규제도 다시 정비된다. 종이컵은 대형 프랜차이즈 등 규모가 큰 식당·카페부터 단계적으로 매장 내 사용 금지가 재도입된다. 플라스틱 빨대는 원칙적으로 비치 금지이며 고객이 요청 시에만 제공한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벌써 우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손님이 빨대 달라고 화내면 어쩌냐"는 반응이 나온다. "종이컵 금지했다가 풀었다가 다시 금지라니 재고 처리는 누가 해주나" 등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다음 주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2027년 시행 전까지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7년 커피값 계산서

현재 아메리카노 한 잔이 4500원이라고 가정한다. 제도 시행 후 텀블러 없이 마실 경우 실질 가격은 4700원이 된다. 컵값 200원을 가정한 수치다. 반면 텀블러를 쓰면 300원 할인을 받아 4200원이다. 격차는 500원이다.


정부의 의도는 500원의 가격 차이를 통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100~200원의 저항감을 뚫고 무거운 텀블러를 매일 들고 다닐지는 미지수다. 2025 현재 편의성과 경제성 사이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됐다. 정책의 성패는 컵값이 아니라 텀블러를 씻을 있는 세척기 보급 인프라 확충에 달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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