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달래는 독재 - '총과 구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김정은 체제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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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다세해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5-07-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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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이 선전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더 이상 '적폐 청산', '원수 타도'와 같은 구호만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김정은 체제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새로운 컨셉의 드라마다.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TV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백학벌의 새봄(A New Spring in Paehaek Plain)'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청년 간부의 헌신과 농촌 개발을 다룬 미담이지만, 그 이면에는 뚜렷한 정권 이미지 관리와 민심 달래기 전략이 깔려 있다.



더 이상 혁명가극은 통하지 않는다.

과거 북한의 선전 콘텐츠는 단일한 주제를 반복하는 구호식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외면과 내부 정보 유입의 증가로 인해, 이런 구호는 효과를 잃었다. 김정은 체제는 이제 눈물과 공감을 동원한 '서사 중심 콘텐츠'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진보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택한 생존 전략이다. 그들이 바꾼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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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의 함정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갈등하고 실수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마주한 문제는 식량 부족, 지역 간 불균형, 시스템의 비효율 등이다. 이는 과거 선전에서는 금기시되던 내용들이다. 정권은 이제 이 현실을 드러내되,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 의지'나 '지역 지도자' 탓으로 몰아간다.


결국 이야기는 항상 '위에서 보낸 간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수령의 은덕'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민중의 불만을 정서적으로 중화시키는 포장지일 뿐이다.



선전 아닌 척, 더 교묘한 선전

이전에는 정권이 말하고, 사람들은 듣기만 했다. 이제는 정권이 '같이 우는 척' 하며, 사람들의 감정을 선점한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전략이 아니라, 통제 기술의 진화다. 감성적 드라마는 감시보다 강력한 순응을 유도한다. '감동'이라는 이름 아래, 정권은 비판 대신 연민을 유도하고, 문제를 인식하게 하기보단 감정으로 덮는다.



총보다 스토리, 구호보다 서사

'총과 구호로는 더 이상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김정은 체제가 이제껏 감추려 했던 바로 그 약점이,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선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옷을 갈아입었을 뿐, 목적은 여전히 똑같다 ― 체제 유지를 위한 정서적 통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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