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은 많은데 왜 잘 팔릴까, 랜드로버가 사랑받는 역설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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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김바비의 바비위키'는 자동차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역사·문화·소비 심리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영상은 ‘신뢰성이 낮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30만 대 이상 판매되는 랜드로버의 모순적인 인기를 다룬다. 단순한 품질 논쟁을 넘어, 브랜드가 어떻게 단점을 감수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사로 참고할 가치가 있다.
고장에서 시작된 브랜드, 우연이 만든 정체성
랜드로버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장 잦은 지프의 대체재’를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철이 부족했던 영국 로버사는 항공기용 알루미늄 합금인 ‘버브라이트’를 차체에 사용했고, 단순한 평판 구조와 남아 있던 군용 도료로 차량을 제작했다. 비용 절감과 수출 실적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 덕분에 녹슬지 않는 차체와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이라는 랜드로버의 핵심 특징이 만들어졌다.
초기 랜드로버는 농기계 대체용이자 인프라 복구용 차량으로 영연방 국가에서 높은 신뢰를 얻었고, 다목적 오프로드 차량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자동차 산업의 혼란과 품질 하락
문제는 차가 아니라 회사였다.
귀족 경영, 잦은 파업, 무리한 합병으로 혼란에 빠진 영국 자동차 산업 속에서 로버사는 브리티시 레이랜드 체제에 편입됐다.
랜드로버는 몇 안 되는 수익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이 다른 부실 브랜드를 메우는 데 사용되며 연구·개발이 정체됐다. 이 시기부터 랜드로버는 잦은 고장과 낮은 신뢰도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혼란의 시기에 랜드로버의 ‘거칠고 투박한 정체성’은 더욱 굳어졌다.
레인지로버와 귀족적 야성의 탄생
1970년 등장한 레인지로버는 오프로드 성능에 럭셔리 감성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제시했다.
험지를 달릴 수 있으면서도 고속도로에서는 안락한 SUV는 당시 영국 상류층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직접 레인지로버를 운전하는 모습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랜드로버는 시골 농기계 이미지에서 도심에서도 과시 가능한 상류층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이른바 ‘슬론 레인저’ 문화 속에서 랜드로버는 실제 오프로드 성능보다 상징성으로 소비됐고, ‘첼시 트랙터’라는 조롱 섞인 별명조차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단점조차 소비되는 과시적 소비
랜드로버의 품질 문제는 상류층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었다. 이들은 차량을 여러 대 보유하고 있었고, 잦은 고장은 오히려 “이 차가 없어도 되는 여유”를 드러내는 신호가 됐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 논리처럼, 결함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지위의 증명이 된 것이다. 험지를 달릴 필요 없는 도심에서 랜드로버의 오프로드 성능은 쓸모없었지만, 바로 그 쓸모없음이 ‘와일드하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낮은 신뢰도는 단점이 아니라, 브랜드 서사의 일부가 됐다.
BMW·포드·타타, 그리고 부활
1990년대 이후 랜드로버는 BMW와 포드를 거치며 주인을 바꿨고, 2008년 인도의 타타 모터스에 인수됐다.
당시에는 품질과 브랜드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지만, 타타는 비간섭 전략을 택했다. 영국 경영진과 엔지니어링을 유지한 채 자본과 시간을 제공했고, 이는 레인지로버 이보크, 신형 디펜더 등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신뢰도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브랜드 매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리스 중심의 소비 구조 속에서 감가상각과 유지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랜드로버는 ‘빌려 타는 부자의 차’라는 농담이 나올 만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단점을 감수하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
랜드로버는 시장 논리만 보면 실패해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차다. 비싸고, 고장이 잦고, 감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랜드로버를 원한다. 이는 제품의 완성도보다 브랜드가 만들어낸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랜드로버의 사례는 소비가 언제나 합리적 선택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진짜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단점조차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모순이야말로 랜드로버가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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