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강연 - 뉴스는 넘치는데 신뢰는 줄어든다…‘질문하는 앵커’가 던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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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세바시 강연 Sebasi Talk(@sebasi15)'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포맷으로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하는 강연형 콘텐츠 채널이다. 성공담이나 동기부여에 그치지 않고, 실패·좌절·전환의 순간을 중심으로 삶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 강연자는 유명 인사부터 평범한 개인까지 폭넓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검증된 이야기만을 무대에 올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채널의 강점은 자극보다 정제된 메시지와 서사 구조에 있다. 빠른 소비를 유도하는 유튜브 환경 속에서도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신뢰로 이어졌다. 세바시는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콘텐츠를 지향하며, 시청자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만드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빠른 뉴스의 시대, 판단은 왜 더 어려워졌나

요즘 뉴스는 넘친다. 포털, 유튜브, SNS를 열면 하루에도 수백 개의 뉴스가 쏟아진다. 속보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정보 접근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신은 오히려 커졌다. 뉴스를 많이 볼수록 판단이 선명해지기보다 혼란스러워졌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 혼란의 배경에는 플랫폼 환경의 변화가 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싶은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그 결과 뉴스 소비는 점점 편식 구조로 바뀐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군가는 ‘분노해야 할 일’로, 누군가는 ‘보지도 말아야 할 이슈’로 인식한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사회적 합의의 토대는 약해지고, 뉴스는 사실 전달보다 감정 동원의 도구로 소비되기 쉬워진다.


앵커의 눈물은 개인 감정이 아니라 ‘사건의 비정상성’이었다

전통적으로 앵커는 감정을 배제한 채 뉴스를 전달하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객관성과 중립성은 신뢰의 핵심 기준이었고, 감정 표현은 오히려 뉴스의 무게를 흐리는 요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계엄 관련 보도 국면에서 등장한 ‘앵커의 눈물’은 이 원칙이 항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 눈물이 주목받은 이유는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 상황 자체가 중립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비정상적이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흔들리는 순간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는 태도는 오히려 현실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 눈물은 언론이 사건의 심각성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잘 묻는 질문’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듣는 태도’

이 시사 프로그램이 차별화된 이유는 질문의 방식에 있었다. 흔히 좋은 질문은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첫 질문보다 답변 이후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이 더 많은 정보를 끌어낸다. 질문의 힘은 공격이 아니라, 얼마나 잘 듣느냐에서 나온다는 접근이다.


이 태도는 인터뷰 형식에도 반영됐다. 스튜디오 중심의 공방형 대화 대신, 직접 찾아가 듣고 이동하며 대화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준비된 질문지를 소화하기보다 상대의 말 흐름 속에서 맥락을 따라가는 인터뷰는 단순한 논쟁을 넘어 설명과 이해의 영역으로 확장됐고, 이는 기존 시사 토론과 다른 신뢰를 만들어냈다.


알고리즘은 중립이 아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플랫폼 시대 뉴스 소비의 가장 큰 위험은 알고리즘의 편향성이다. 알고리즘은 사실을 판단하지 않고, 클릭과 체류 시간을 기준으로 비슷한 콘텐츠만 반복 노출한다. 이 구조는 확증 편향을 강화해 한쪽 관점의 정보만 세상의 전부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음모론이 뉴스처럼 소비된다.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알고리즘을 끊는 것이 아니라 흔드는 것이다. 같은 이슈를 여러 매체, 서로 다른 온도로 비교해보는 습관은 자신이 보고 있는 정보의 위치를 인식하게 만들고, 판단의 주도권을 다시 개인에게 돌려준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사회의 판단력도 멈춘다

이 모든 논의가 향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언론의 역할은 정답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질문이 사라지면 뉴스는 선동이 되고, 판단은 진영에 종속된다. 질문이 살아 있을 때만, 공감과 합의의 가능성도 함께 유지된다.


뉴스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빠른 말이 아니라, 끝까지 듣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신뢰를 잃은 뉴스의 시대에 다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질문의 품질이라는 점을 이 사례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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