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합니다… 영포티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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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긴 먹었는데, 맛이 없어요. 값은 치러야 하는데, 내가 주문한 적도 없는 메뉴 같아요."
가수 이적의 말처럼 나이는 때 되면 배달되는 청구서와 같다. 최근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적수다'에서는 이적, 원소윤, 조아란, 박찬용이 모여 '나잇값'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의 수다는 단순한 농담 따먹기가 아니다. 2025년 한국 사회가 직면한 '어른의 부재', 그리고 '새로운 중년'의 탄생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은 인구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나이의 기준이 무너진 시대, 우리는 제 값을 하고 있을까.
양복 대신 후드티… 40대, 그들은 누구인가
방송에서 에디터 박찬용은 "내 또래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슈프림 후드티를 입는다"고 했다. 이른바 '영포티'다. 과거의 40대가 '양복 입은 김 부장'이었다면, 지금의 40대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큰 손'이다.
나스미디어의 '2024 NPR 타겟 리포트'와 최근 통계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관심사는 콘솔 게임과 웹툰으로 확장됐다. 자산 규모도 30대보다 60% 이상 많다.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젊은 취향을 소비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슈프림 입는 게 문제가 아니라, 슈프림 입고 주책 부리는 게 문제죠." (조아란)
핵심은 태도다. 젊은 척하려는 강박이 오히려 '나잇값 못하는 어른'을 만든다. 2030 세대가 영포티를 향해 "꿀 빨아놓고 우리 흉내 낸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게 사는 것'과 '철이 없는 것'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40대는 길을 잃었다.
화려한 싱글 vs 고독한 가장, 정답은 없다
"서울 자가에 사는 대기업 친구들이 위대해 보이지만, 저는 제 방식대로 삽니다." (박찬용)
1인 가구 800만 시대다. 202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6.1%가 혼자 산다. 과거엔 40대에 혼자 살면 '하자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이젠 '능력 있는 싱글'로 포장된다. 하지만 이적은 "가정을 꾸리며 세계관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좁은 욕조 속 달팽이'였던 그가,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가장이 되면서 느끼는 무게감은 또 다른 성숙을 가져왔다.
문제는 사회가 여전히 단일한 정답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각자의 삶에서 책임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면 그 자체로 '나잇값'을 하는 것이다. 방송은 "나이가 주는 획일적 의무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꼰대가 되기 싫어 입을 닫은 선배들
'적수다' 출연진은 입을 모아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한탄했다. 동시에 "나도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입을 닫는다"고 털어놨다. 조언이 사라진 사회다.
김연경 선수처럼 실력이 압도적이면 쓴소리도 '카리스마'가 되지만, 평범한 직장 상사의 조언은 '잔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후배가 잘못된 길로 가도 침묵한다. 이를 '쿨하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방관이다.
"듣기 싫은 소리도 해줄 수 있는 게 진짜 어른의 자격 아닐까요?"
진정한 나잇값은 무조건적인 침묵이 아니다.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말이 권위가 아닌 애정에서 비롯됐음을 증명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업데이트 멈추면 늙는다
이적은 나이 듦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비유했다. 버그를 수정하고 기능을 개선하며 '버전 업'을 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은 71.6세다. 법적 기준(65세)보다 6살이나 많다. 80세 아버지가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70세가 청년회장을 맡는 시골 풍경도 이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건 숫자보다 유연성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과거의 데이터만 고집하는 순간, 업데이트는 멈추고 시스템은 먹통이 된다.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메타인지'야말로 나잇값을 위한 필수 패치다.
나이, '값'이 아닌 '멋'으로
2026년 이후, 한국 사회의 연령 파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기업들은 정년 연장을 논의하고, 패션계는 '에이지리스(Ageless)' 룩을 내놓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잇값'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하는 것이 어른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을 즐기되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지갑은 열되 입은 신중하게 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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