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룰의 민족] 치킨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한국인이 유독 룰에 집착하는 과학적 이유
본문
문화 차원으로 본 'K-직장인'의 비애
100점 만점에 100점 '장기지향성' 한국 vs 26점 미국 호프스테더
"새벽 1시에 야식으로 치킨 먹는 게 국룰인가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질문이다. 치킨을 먹는 사적인 결정조차 남에게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 우리는 이것을 '국룰(국민 룰)'이라 부르며 안정감을 느낀다.
반면 미국인은 새벽 1시에 치킨을 먹든 피자를 먹든 "내 맘(My way)"이다. 단순히 성격 차이일까? 저명한 문화심리학자 기어트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을 들이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승연 작가와 전 구글 디렉터 미키 김이 분석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DNA, 그 속에 숨겨진 놀라운 수치들을 파헤쳐봤다.
불확실성은 곧 공포 '국룰'을 낳은 85점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확실성 회피'다. 호프스테더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불확실성 회피 점수는 100점 만점에 85점. 반면 미국은 46점에 불과하다.
이 수치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인은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을 극도로 스트레스 받아한다. 때문에 사회적 합의나 규칙, 즉 '룰'을 만들어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든다. "연봉 6천만 원이면 차는 그랜저", "결혼 적령기는 30대 초반" 같은 사회적 매뉴얼이 횡행하는 이유다.
직장에서도 이 차이는 극명하다. 미키 김 전 구글 디렉터는 "한국 기업 미팅은 사전에 조율된 결론을 확인하는 자리라면, 미국 기업 미팅은 불확실성을 안고 토론을 즐기는 자리"라고 지적한다. 한국 직장인이 '답정너' 회의에 지치는 건, 어쩌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DNA 탓일지도 모른다.
'존버'의 민족 한국, 장기지향성 세계 1위?
가장 충격적인 수치는 '장기지향성(Long Term Orientation)'이다. 한국은 무려 100점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오늘만 사는' 듯한 미국은 26점에 그쳤다.
한국인은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현재의 고통을 인내한다.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믿고, 수십 년 전통의 대학 서열이 바뀌면 "근본이 무너졌다"며 분개한다. 이는 단기간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변화에 둔감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낳았다.
반면 미국은 '패스트 페일(Fast Fail)' 문화가 지배한다. "3년만 딴짓해볼게"라는 선언이 용인된다. 분기별 실적에 일희일비하지만, 그만큼 방향 전환이 빠르고 혁신에 유연하다.
나는 억울하다.. 억눌린 욕망과 자살률
'자율적 삶(Indulgence)' 지수에서 한국은 29점으로 '억제(Restraint)' 성향이 강한 나라로 분류됐다. 미국(68점)이나 멕시코(97점)와 비교하면 금욕적인 수도승 수준이다. 이 지수는 범죄 양상과도 소름 돋는 상관관계를 보인다. 욕망 표출이 자유로운 나라는 살인율이 높은 반면, 욕망을 억누르는 나라는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가 있다.
실제로 OECD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2명(2022년 기준)으로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다. 억눌린 '화'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거친 개인주의 vs 섬세한 관계주의
미국 문화를 정의하는 단어는 1928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언급한 '거친 개인주의(Rugged Individualism)'다. 사회의 도움 없이 야생에서 살아남는 카우보이나 람보가 그들의 영웅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개인의 생존보다 집단의 조화, 장기적 안정이 우선이다.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왜 우리는 이렇게 피곤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해졌다. 우리는 100년 대계를 세우고(LTO 100),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 하며(UAI 85), 욕망마저 억누르는(IND 29)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만큼은 '국룰' 대신 '내 맘'대로 메뉴를 골라보는 건 어떨까. 29점짜리 억제된 삶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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