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EP.02 “0.001초를 위해 태어난 괴물, F1 머신의 정체”
본문
이 차, 그냥 차 아닙니다
F1 머신은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와는 출발부터 목적이 달라요.
이건 사람이 조종하는 ‘달리는 슈퍼컴퓨터’이자,
매 시즌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기술 실험장’입니다.
어느 정도냐면요.
핸들 하나가 수천만 원,
차 한 대 전체는 250~300억 원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기술이 집약돼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공기역학이다
F1 머신의 가장 핵심적인 성능은 엔진보다 ‘다운포스’입니다.
다운포스란 고속 주행 시 차를 지면에 눌러붙게 만드는 힘이에요.
즉, 차가 날아가지 않고 코너를 붙어서 돌 수 있게 하는 물리력.
이를 위해 차체 전체가 하나의 날개처럼 설계돼 있어요.
<출처: F1Education 유튜브 일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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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 윙(앞날개): 방향 제어 및 노즈 안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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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어(차량 바닥):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를 유도하는 핵심. 차량 하부의 기압 차를 이용해 차를 지면에 밀어붙이는 효과로, 다운포스를 크게 높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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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윙(뒷날개): 고속 안정성과 브레이크 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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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퓨저: 차량 뒤쪽 바닥에서 공기의 흐름을 빨아들이며 지면 접착력을 높임
이러한 요소를 총칭해 ’에어로 파츠(Aero Parts)’라고 합니다.
에어로 파츠는 공기의 흐름을 조작하여 속도와 코너링 성능을 향상시키는 장치들로, 팀마다 그 설계가 전혀 다릅니다.
각 부품의 곡률, 위치, 높이, 각도가
모두 CFD 시뮬레이션(전산유체역학)을 통해 설계됩니다.
그리고 1mm만 달라도 랩타임이 바뀔 수 있어요.
F1 머신의 엔진,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다
2025년 기준 F1은 V6 1.6L 하이브리드 터보 엔진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MGU-H와 MGU-K라는 회생 에너지 장치를 결합한
복합 동력 시스템이 탑재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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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U-H: 터보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전기로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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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U-K: 브레이크 시 회수한 운동에너지를 저장했다가 가속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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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에너지 스토어): 위 두 장치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
즉, 이 차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모두 가진
극한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괴물입니다.
핸들, 무게, 소재: 전부가 목적형 설계
F1 핸들은 버튼이 수십 개 달려 있습니다.
연료 혼합 비율, ERS 출력 조절, 라디오, 디퍼렌셜 설정, 브레이크 밸런스까지
모든 것이 손끝 하나로 조작돼요.
<Mercedes-AMG PETRONAS F1 Team의 핸들과 콕핏 / 출처: Mercedes-AMG PETRONAS F1 Team >
핸들 하나 가격만 약 5천만 원.
전자장비+카본+항공 부품이 섞인 맞춤형 컴퓨터죠.
머신 전체 무게는 약 798kg(드라이버 포함 기준).
하지만 구조는 극도로 가볍고 단단해야 해서
카본파이버, 티타늄, 마그네슘 합금 등 최고급 경량 소재가 동원됩니다.
브레이크는 일반 브레이크가 아니라
카본디스크와 복합재 패드로, 1,000℃ 이상의 온도에서 작동하죠.
규정이 기술을 결정한다
F1이 정말 흥미로운 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기술들이 무제한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팀은 FIA의 규정 안에서만 기술을 개발해야 해요.
즉, 똑같은 규정서를 갖고
누가 더 똑똑하게, 정교하게 해석하느냐의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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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크기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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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유닛 연간 교체 횟수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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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상한제(버짓 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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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공유 금지 조항
F1의 기술은 무한경쟁이 아니라
‘한계 안에서 창의력으로 돌파하는’ 두뇌 게임입니다.
이 차는 경주가 끝나면 해체됩니다
F1은 경기가 끝난 후,
차를 거의 분해하다시피 해서 부품 점검, 교체,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심지어 ‘트랙마다’ 세팅이 다릅니다.
모나코처럼 코너가 많은 서킷에선
다운포스를 최대로, 직선이 많은 몬자에선
차를 날렵하게 세팅하죠.
이걸 경기 당일 새벽까지 조정합니다.
그래서 팀마다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붙고,
실시간 무선 통신으로 랩마다 설정을 바꾸는 일도 흔합니다.
이 차는 ‘데이터 공장’이다
F1 머신 한 대에는 약 300개 이상의 센서가 장착돼 있습니다.
서스펜션의 높이, 타이어 압력, 브레이크 온도, 기어박스 상태,
심지어 드라이버의 심박수와 가속 페달을 밟는 각도까지 측정됩니다.
<피트월에서 데이터를 보고 있는 Red Bull 엔지니어들 출처: Red Bull>
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서킷 옆 피트월, 그리고 영국 본사의 분석센터로 전송됩니다.
현장에 있는 전략가와 수백 km 떨어진 본사 엔지니어들이
하나의 레이스를 동시에 플레이하고 있는 셈이죠.
시뮬레이터가 또 다른 드라이버다
F1 팀은 실제 경기 중에도
시뮬레이터 드라이버를 투입합니다.
현장 데이터가 본사로 오면,
즉시 시뮬레이터에서 다른 전략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피트월에 다시 전달합니다.
경기장 밖에서 동시에 또 하나의 경기를 하고 있는 셈이죠.
교체가 곧 전략이다
F1에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교체 제한’**이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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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유닛은 연간 3기만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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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U-K, MGU-H, 배터리도 교체 횟수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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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 시 ‘그리드 페널티(Grid Penalty)’ 부과
그리드 페널티란 예선 성적이 좋아도
본선 출발 순서를 뒤로 밀리는 불이익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3위로 예선을 마쳐도
규정 초과로 인해 10위에서 출발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경우에 따라선 피트레인 출발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하죠.
기술 실패는 팀을 무너뜨린다
2022년, 메르세데스는 규정 변경에 맞춰
‘사이드포드 없는 설계’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차체가 고속 주행 시 위아래로 출렁이는
‘폴포싱 현상’에 시달렸고,
결국 시즌 내내 페이스를 회복하지 못했죠.
<2022년 Mercedes의 W13 레이스카>
한 번의 설계 실수, 한 번의 실험 실패가
몇천억 원과 팀의 명예, 드라이버의 커리어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이 차는 매주 진화한다
F1 머신은 매 경기마다 진화합니다.
새로운 플로어, 새로운 프론트윙, 냉각 구조 개선 등
‘업데이트 전쟁’이 매주 벌어집니다.
심지어 날씨 예보만 바뀌어도
에어로 파츠가 교체됩니다.
이 속도와 효율의 차이가
팀 간 격차를 만들고, 반전을 연출하기도 하죠.
최종 정리: 이 차는 ‘지식으로 만든 괴물’이다
F1 머신은 단순한 스피드 머신이 아닙니다.
이건 인간의 창의력과 과학, 자본과 집념이 만들어낸
달리는 집단 지성의 산물이에요.
그리고 이 기술력의 격차가
우리가 매주 보는 랩타임, 추월, 사고, 우승이라는 결과로 드러납니다.
그냥 빠르다고 이기는 게 아닙니다.
똑똑하고, 유연하고, 단단한 팀이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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